2020. 4. 6. 15:42ㆍ선교칼럼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20세기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제 3 세계의 교회 성장은 선교에 있어서도 삼자 선교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삼자 선교는 죤 네비우스가 한국교회에 전한 삼자 원리를 적용시킨 말이다. 따라서 지금은 더 이상 선교란 서구교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이 사실이 되고 있다. 1980년에 제 3 세계는 10,000여 명의 해외 선교사를 후원하였으나 1982년에 이르러서는 그 수는 15,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2014년 한국교회를 통한 해외 선교사의 파송도 공식적으로 2만 8천 여명을 상회하고 있다. 그동안 제 3 세계 교회들은 민족복음화는 자신의 민족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는 신앙을 가졌다. 그러나 이제는 자민족과 자국가뿐만 아니라 세계복음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제 3 세계 교회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의 시메다 미시마는 기독교에 대해 배우려고 미국에 가서 신학교를 졸업한 후1874년 선교사가 되어 일본으로 돌아왔다.. 비록 그는 미국 선교회의 도움을 받아서 사역하였지만 독립심이 강해서 일본식으로 선교 일을 하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영성 운동가인 우찌무라 간조는 “성경 이외에는 아무것에도 간섭받지 않는다는 원칙이래 미국과의 연대를 거부하고 일본에서 ”무교회“운동을 일으켰다. 19세기 일본 기독교 지도자들 중에서 서구 영향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사람은 마사키사 우에무라였다. 그는 외국의 후원을 받아 선교사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복음화 운동을 전개하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1904년 외국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독립적인 신학교를 일본에 설립하였다.
인도에서 사역했던 아난드 차우다리는 고위 브라만 계층의 자녀였으나 개종 이후에 고향인 고아를 떠나 기독교 사역자가 거의 없는 라자스탄에 가서 사역을 하였다. 수십 년간 힘든 사역을 통해 수 천명의 인도인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왔다.. 그는 라자스탄(Rajasthan) 성경학교를 설립하였고 매주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인도 전역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1978년 30여 명 이상으로 구성된 전도팀을 구성학여ㄱ 기독교 문서를 가지고 인도 전역을 순회하였는데 그 결과 6만 명이 통신 성경학교 과정에 입학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오기도 하였다.
필리핀에서는 100여 명의 선교사를 후원하고 있는 지역조직인 필리핀 선교사협의회를 지원하는 CNEC가 있다. 이 선교회의 많은 선교사들은 1961년에 설립된 필리핀 선교훈련원(Philippines Missionary Institute)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 선교 조직인 CNEC의 사역 헌금은 80%가 자국의 성도들에 의해서 헌금이 되고 있다.
제33 세계 기독교인들에 의해 설립된 선교회들은 외부로부터의 후원이나 서구로부터의 재정지원을 거부한다.. 그런 선교회 중의 하나가 FMPBI(Friends Missionary Prayer Band of India)이다. 이 선교회의 지도자 사무엘 카 말슨과 다른 회원들은 무려 400여 명의 선교사를 북인도에 파송하였다.
남미의 페루 출신의 오 베드 말바 레즈(Obed Alvarez)가 주도한 EMAN(Evangelical Missionary Association to the Nations)이다. 그는 약관 21세 의 나이로 그 선교회의 대표가 되었다. 초창기에는 별로 사역에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1983년에는 100여 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알바레즈 자신이 만든 방법을 활용하는 선교사 학교를 후원하는 등 활발한 사역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제 3 세계 교회의 사역 진전은 자연스럽게 서구를 배척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으로 축이 기울어지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해방신학과 같은 반서구 사상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서구문화와 자본주의 사상의 배척을 교회에 적용하였다. 페루의 가톨릭 신부인 구스타보 구티에레즈는 해방신학을 주창하여 서구에 대항하였다.
1980년대에는 해방신학과 더불어 혼합주의가 선교사와 선교학자들 간에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제 3 세계 교회들의 선교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국가별로는 건전한 신학교육과 아울러 복음적인 신학자들을 배출하여 지도력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이제 선교사역을 위한 서구와 제 3 세계의 경계선은 점점 무너져 간다. 필자는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라고 판단된다. 같은 기독교 세력들 간에 반목과 시기와 질투가 아닌 상생의 협력을 통해서 세계선교를 우리 세대에 이루어야 하겠다.
2014년 4월 20일 “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선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아도 마르지 않는 눈물 (0) | 2020.04.07 |
---|---|
성경번역과 배포 선교사인 로충가 푸다이트 (0) | 2020.04.07 |
인간의 잔인함은 죄의 결과 (0) | 2020.04.06 |
박성범 선교사의 유고를 보면서 (0) | 2020.04.06 |
죽음, 죽음, 죽음! (0) | 2020.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