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도 마르지 않는 눈물

2020. 4. 7. 12:13선교칼럼

참아도 마르지 않는 눈물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20144월 은 어쩌면 나에게 참으로 잔인한 달인 것 같다. 이러한 감정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자산인 단원고 학생들 300여 명을 바닷속에 수장시키는 잘못된 구조 속에서 삶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차마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볼 수 없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 인류 구원을 이루셨던 복음의 빛이 그렇게도 무참하게 무너져 내려가기 때문이기도 한다. 필자는 오늘 무엇인가 쓰겠다고 펜은 들었지만 도저히 쓸 수가 없다. 다만 이러한 마음을 잘 담아낸 기사가 있어서 소개함으로 나의 글을 대신하고자 한다. 이 글은 동아일보가 세월호 사건의 취재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다.

  “모두가 상주(喪主)’처럼 슬퍼했다. 조문객 누구도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영정 앞에서 울음을 참지 못했다. 분향소가 처음 열리던 날 22명 이었던 영정은 닷새 만에 143명으로 늘었다. 27일 에만 24명 의 희생자 영정이 합동분향소에 더해졌다. 이제는 희생자의 친구들도 자원봉사자의 안내를 받고서야 친구의 사진을 찾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한 위패에는 아직 아이의 죽음을 모르는 할머니를 위해 이름을 적지 않았다. 늘 붙어 다녔던 친구의 시신을 찾을 때까지 몇몇 영정은 옆자리를 비워뒀다. 각 영정마다 담긴 사연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27일 오전 경기 안산시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임시 합동분향소 입구부터 2km 남짓 긴 줄이 생겼다. 1시간 을 꼬박 기다려야 먼발치로 합동분향소가 보였다. 전날에는 햇볕이 뜨거웠고 27일 은 봄비가 내렸지만 늘어선 줄은 점점 길어졌다. 해가 진 뒤에도 조문객은 줄어들지 않았고 누구도 불평 없이 차분히 자리를 지켰다.

  단원고에 심은 백악관 목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당한 안산 단원고에 보낸 백악관의 목련 묘목이 26일 단원고 교정에 식재됐다. 조문객 옆으로는 수시로 운구차가 지나갔다. 분향소 주변은 건물이 낮고 도로가 좁아 운구차가 유독 커 보였다. 몇몇은 운구차를 향해 목례를 했다. 경기도 합동대책본부는 지금까지 총 16만 명이 넘는 조문객이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았다고 밝혔다.

  조문 행렬이 계속되면서 준비된 10만여 송이의 국화가 동났다. 그 대신 검은색 근조 리본이 제단에 올려졌다. ‘어른으로서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이렇게 죄스러웠던 적이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그 추운 곳에서 당장이라도 구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이들은 포스트잇에 각자의 생각을 적어 벽에 붙였다. 내용은 달라도 희생자에 대한 미안함은 같았다. 검은 옷을 입고 홀로 분향소를 찾은 한 60대 여성은 봉오리도 제대로 여물지 않은 싹을 어른들이 짓밟았다. 우리 모두가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며 울먹였다.

  서울광장 분향소 27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 시청. 본관 앞 대형 걸개그림에 적힌 미안합니다란 글귀가 슬프게 느껴진다. 전국 곳곳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마다 희생자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도 슬픈 발길이 이어졌다. 비가 내렸지만 분향소가 차려지기 1 시간 전부터 100여 명의 시민이 광장에 모여 분향소가 마련될 때까지 기다렸다. 많은 시민은 우산도 쓰지 않고 줄을 선 채 차분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분향소 한편에 희생자들과 실종자들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공간에 한 초등학생은 형아 누나 지금 살아있어? 춥지 않아? 하늘나라 가서 행복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오후 3시 반 분향소를 찾아 노란 리본에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박원순이라고 적었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크고 작은 촛불기도회도 전국에서 열렸다. 주말 동안 안산 화랑유원지에서는 단원고 총동문회와 안산시민이 함께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촛불기도회가 마련됐다.”

  우리는 너무나 후안무치하게 십자가를 방패막이하는 경향이 있다. 종교법에 가려서 각종 탈법은 물론 심지어 살인까지도 저지르면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제를 달기도 한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감당하면서 유명을 달리했을 학생들 앞에서 구원, 사랑, 평안을 설교하는 우리들은 과연 누구인가?

201454교회연합 신문 선교 칼럼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