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 13:44ㆍ선교학 강의
사도 바울의 이방인 구원의 선교 원리
조귀삼 박사( 전 한세대 선교학 교수)
사도 바울의 선교 원리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이방인을 구원의 역사 속에 포함시키는 사역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고 말했다. 이방인에게로 향한(στρεφόμεθα εἰς τὰ ἕθνη) 복음(행θνη)복음(행 13:46; 18:6; 22:18; 28:28)은 사도 바울에게 있는 핵심적인 선교 원리이다..
누가는 바울의 이방인 사역을 기슬하면서 이사야서 42장 6절인 “나 여호와가 의료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선교활동은 초창기 예루살렘으로부터 지리적 확산이 있었다. 그리고 이방 선교에서는 분명히 회당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대인의 대다수는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음을 알지 못함으로 그들이 가진 특권(particularism)마저도 상실해 버렸다. 따라서 구원에 있어서 모든 우선권의 위치를 상실해 버렸다. 결국 예수님의 초림 이후로는 이스라엘은 단순히 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만민과 세상의 일부에 속할 따름이다.
사도 바울의 이방인 선교의 원리에 있어서 먼저 이방인의 위치와 이스라엘과의 관계 그리고 그의 이방인 사역을 설명하고자 한다.
1. 만민(이방 민족들)과 보편주의
“만민(nations, 히. goyyim)”이라는 호칭은 “이방인(heathen)”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이 말은 종교적 의미의 단어는 종교적인 용어이다. 만민의 기원은 창세기 10장의 바벨탑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으로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서 혼란이 왔고 백성들은 온 땅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여기에서 흩어진 열국의 목록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 가족, 언어 및 민족들과의 관계를 가지셨음을 보여주며(창 10:5,20,31), 노아와의 언약(창 9:9,10)은 전 인류와의 언약이다.
브라우(Johannes Blauw는)는 만민(이방인)의 위치와 의미에 대하여 말하기를, 첫째는 이방민족은 버림받는 민족이 아니다. 둘째는 비록 이방인들이 구약 속에서 다양하게 다루어지지만 언제나 이스라엘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다루셨으며 이는 이스라엘과 마찬 가지로 이방인도 항상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의 관계로 설명한다. 셋째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응징할 때 심판의 도구로 이방인을 사용하셨다. 넷째는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증인들이다. 다섯째는 열방에 대하여 많은 예언을 한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모든 민족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알게 될 것을 예견하고 있다. 여섯째는 여호와에 대한 모든 민족들의 인식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또한 부름과 약속을 가진 미래의 일로서 설명되고 있다. 일곱째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옴으로 이스라엘과 모든 민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으로 살아 계신 한 분이심을 확신하게 해주는 증거이며, 이 종말론적인 견해는 종종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연결된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말씀을 증거 하면서 말하기를 “온 인류는 하나의 혈통에서 나왔다(ἐποίησέν τε ἐξ ἑνὸς πάν ἔθνος ἀνθρώπων, 행 17:26)”고 하였다. 따라서 그 구성원 각자는 하나님의 거대한 가족의 일원이다(엡 3:14-15).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Let Us make man in Our image, 창 1:26). 하나님의 계획은 한 사람도 멸망을 받기를 원하지 않고(벧후 3:9) 모든 사람들이 진리 가운데로 이르기를 바라신다(딤전 2:4).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선교사상을 알 수 있다. 비록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이 타락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한 경우를 보시면서도 인류 구속에 대한 관심을 멈추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보편주의(universality) 선교사상이(universality) 특수주의(particularism)로 바뀌면서 인류 구원의 성취를 위하여 한 부족을 선택하심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보편적”인 도구이다.
2. 열방에 대한 이스라엘의 역할
이스라엘은 지상의 모든 나라들 가운데 여호와에 대한 독특한 관계를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에 의하여 구속되었다(사 43:1). 이러한 구속의 뜻은 아브라함과의 계약(창 12:3; 22:18)과 야곱과의 언약(창 28:14) 으로 확실하게 인증된다.. 케인(J.Herbert Kane)은 이스라엘의 선택의 목적에 대하여 말하기를,
첫째는 이스라엘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수령하고 보존할 사명을 부여받았다(히 1:1-3). 둘째는 이스라엘은 “구속자”가 인류 역사의 흐름 속으로 들어오는 통로의 역할을 담당할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 구속자는 아브라함의 자손(마 1:1), 유다의 족속(창 49:10), 다윗의 가문(롬 1:3)으로부터 나오게 되었다. 셋째는 이스라엘은 열국 중에서 하나님의 종(사 44:1-2)과 증인(사 43:10) 43:10)으로서 사명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선택은 하나님의 선택의 목적(object)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선택에 근거하여 요구하시는 봉사의 주체(subject)이다. 다시 말해서 선택을 통한 봉사가 아닌, 봉사를 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선택이란 근본적으로 하나의 특권이 아닌 책임이므로, 이 책임을 저버리게 되면 선택은 형벌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만민에게 하나님을 알리시기 위한 첫 번째 조치이며 이스라엘을 열방과 분리시켜서 친히 통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도로 보아야 한다. 결국 유일신이신 여호와를 절대적으로 섬김으로서 우상숭배와 부도덕으로 가득 찬 열방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레 19:2)과 영광이 온 땅에 증거 되어야 한다(사 62:2). 이러한 요구는 당연히 이스라엘의 이방을 향한 선교적 역할로서 나타난다.
3. 사도 바울의 이방인 선교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 선교를 위하여(ἵνα εὐαγγελίζωναι αὐτὸν ἐν τοίς ἔθνεσιν. 갈 1:16) 선택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다메섹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므로 말미암아 이방선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였다. 바울의 사역은 하나님의 온 인류에 대한 관심과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언제부터 그의 이방인 사도직을 확신하였는가? 이는 곧 다메섹 사건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들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즉 다메섹(행 9:15)인가? 아니면 사도행전 13:46절에 되어진 상황으로 보아서 유대인들의 복음의 거부 때였는가? 이에 대하여 김세윤은 다메섹 사건이라고 강조하였다. 다메섹 사건 이후에 바울은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갈 1:16)” 즉시(εὐθέως)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여기에서 “의논하다(προσανατίθεσθαι)”는 단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과 상의한다는 개념보다는 훨씬 강하다. 그것은 꿈이나 불길한 징조 또는 전조(前兆) 같은 것들에 관하여 자격을 가진 해석자로 인정된 어떤 사람과 상의한다는 기술적 의미를 지닌다. 왜 바울은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였는가? 바울이 받은 계시는 인간의 어떤 중재를 필요치 않았기 때문에 바로 즉시 행동에 옮길 수 있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는 철저하게 유대 교육을 받고 율법을 지킴에 흠이 없었던 바울에게도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혹시 이방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에 이방인이 유대인보다 먼저 구원을 받을 가능성을 묘사하는 가르침이나 문헌 속에 있는 신학은 전혀 알려진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역을 함에 있어서 복음에 “빚진 자(ὀφειλέτης)”로서 자신을 묘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롬 1:14). 그리고 만약 자신이 이 사역을 감당치 않을 때 “화(ἀνάγκη)”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그의 고백을 살펴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김세윤은 사도 바울의 구원역사는 이방인들 덕택에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즉, 이방인의 사역이 아니었으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지 못했을 것이란 말이다.
바울이 이방 선교 열정의 또 다른 이유는 유대민족의 구원(롬 11:25-36)과 무관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롬 11:25 11:25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밀(τὸ μυστήριον)”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τὸ πλήρωμα τών ἐθνών)가 들어오기까지 저희가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라고 하였다. 즉 지금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대체로 거부하고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 드릴 때로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 하나님께서 정한 수 대로 이방인이 모두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게 하는 것 그런 뒤에야 유대인이 완악함이 풀려 모두 구원받으리라는 것들이 바울이 얻은 “비밀”이었다. 롬 11:13에서 자기가 “이방인의 사도”로서 자기의 이방인들 간에서 이루는 역사를 자랑함으로써 자기의 동족 유대인들로 하여금 시기가 나게 하여 그들 중 얼마라도 구원하려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구속사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위치가 이방인을 위하여 하나님의 선민으로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과 마찬 가지로, 이제 세계 만민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향해서 복음이 충만케 증거 되어 감을 볼 수 있다. 이 사실이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이며,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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