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신학 속의 유대인의 위치

2020. 7. 8. 17:51선교학 강의

사도 바울신학 속의 유대인의 위치

조귀삼 박사(전 한세대 교수, 현 세계다문화진흥원 원장)

  기독교는 유대인의 토양 속에서 자랐다. 이것은 구약 속에서 하나님의 선교의 대상으로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언약을 맺으시는 행위 속에서 증명된다. 언약이란 히브리어의 베리트(תי󰕉󰔶:covenant, 14:14)와 헬라어 디아데케(헬라어 διαθήκη 고후 3:14)가 번역어로 사용되었다. 근본적으로 언약의 뜻은 두 당사자가 서로를 위하여 어떤 일들을 하기로 한 구속성을 가진 약속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언약으로서, 이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고서 이 약속 안에 포함된 의무들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언약의 주체가 되셔서 체결하신 은혜의 언약이다.

A. 언약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고 하는 특권 속에서 살았다. 구약 성경 속에서는 언약이라는 말이 다양하게 쓰여지고 있다. 예를 들면, 언약이라는 어원 속에는 동의(agreement), 동맹(alliance), 맹약(league), 조약(treaty)의 뜻이 있다. 이러한 말을 일반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개인과의 맹약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다윗과 요나단(삼상 18:3; 20:8; 22:8; 23:18)의 관계성, 정치적(삼하 3:12), 족장들(14:13, 21:22-32, 26:26-31, 31:44-54), 개인과 종족(2), 왕과 개인(왕상 2:42-46), 왕과 자신의 국가 간(삼하 5:1, 왕하 11:17, 34:8), 정부와 부족들(9:6,11) 맹약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뜻보다는 더욱 중요한 의미는 종교적 의미의 용어로 하나님과 인간 간의 관계 속에서 쓰인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이에 맺는 언약의 대표적인 사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맺은 언약이다. 이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시며, 이스라엘은 그의 종이 되는 언약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언약 속에는 독특성이 있다. 이러한 독특성은 역사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성 속에서 자리 잡고 있다. 즉 아담과는 시작의 언약이며, 노아와의 언약(9:9-17)은 보존의 언약으로, 아브라함과의 언약(17:9 f, 14)은 약속의 언약으로, 모세와의 언약(24:4-8)은 율법의 언약으로, 다윗과의 언약(삼후 7:12-17; 89:3 f, 26f,; 132:11 f,이사야 55:3f)은 왕국에의 언약이다. 이와 같은 언약은 성경 속에서 분명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언약의 개념은 가부장적인 사회의 관습으로부터 차용되었다. 유목적, 혹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개인이나 단체 사이의 계약은 화친한 공동체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법적인 협정이었다. 일반적인 문화적 관례를 좇아서 언약 협정의 당사자들은 협정의 기념으로 돌무더기를 쌓았고, 식사를 함께 하였다. 이와 같은 협정은 화친의 당사자가 희생 제사를 드린 음식을 계약의 보증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눈다는 의미의 동사 바라(삼하 13:6, 12:17)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방 셈족 속에 나타난 신은 그를 숭배하는 자들에게 언제나 예배와 약식을 착취하기 위해서 계약을 맺는다. 마치 봉건  사회에서 영주들이 자신의 영지에 있는 일반 서민들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용된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당시 셈족의 계약 속에 나타난 문화적 습관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언약은 계약의 일방성이 훨씬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이는 신분이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신분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상대인 이스라엘과의 언약은 은혜로운 것이다. 즉 언약에 순종하면 진귀한 보물과 같은 백성이 됨과 아울러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