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23. 17:05ㆍ선교칼럼
바탕가스의 참변
조귀삼(한세대 교수, 세계로 선교연구원 원장)
방학과 함께 선교여행을 떠나는 것이 요즈음 한국 교회의 주요 추세이다. 선교학을 강의하고 있는 필자도 방학을 맞이하여 일본을 다녀와 또 다른 선교팀을 위해서 필리핀의 마닐라에 와 있다. 필자가 지도했던 팀은 훈련을 잘 마치고 안전하게 귀국을 했다. 그러나 참으로 불행한 소식은 한국의 모 선교단체에서 이곳 필리핀에 선교훈련은 받으러 왔던 팀이 모든 훈련을 마치고 귀국 전에 필리핀의 아름다운 섬인 민도로를 방문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난 토요일 민도로 여행을 마치고 주일은 마닐라 사역지에서 보내기 위해 돌아오던 길에 바탕가스에서 배가 뒤집혀 세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실종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죽은 사람 가운데는 필자가 근무했던 단체의 간사 사모님과 어린 딸도 포함되었다. 특히 그 사모님은 사고로 소천 하기 몇 주전 머리 위로 떠가던 대한항공 비행기를 보면서 고향 땅이 너무 그립다고 필자의 집사람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그토록 그리던 고향 땅을 살아서 되돌아가는 길이 아닌 죽음과 함께 되돌아가게 되었다. 한 분의 거룩한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어느 선교학자는 선교는 곧 순교라고 하였다. 그 만큼 환경이 다른 곳에서의 사역이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순교를 당연시하며 사역을 감당한 모습은 요즘 찾아보기 힘들다. 베드로 사도는 순교 시에 예수님처럼 죽는 것이 너무 황송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다. 영원한 선교사인 바울도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형장의 제물로 순교하였다.
현대 선교역사에 위대한 말 한마디가 있다. 아프리카 땅에서 젊은 나이에 질병으로 순교했던 선교사의 마지막 말은 “천명이 희생되더라도 아프리카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였다. 이와 같은 선교사의 마지막 유언은 바울이 사망에 대해서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했던 용기 있는 신앙의 고백이었다.
이러한 절대적 신앙 속에 선교의 꽃이 피는 것이다. 어느 누가 선교를 가볍게 여긴단 말인가. 세속주의와 부흥주의 그리고 사대주의 신학이 가져온 쓰레기 같은 사조들이 어떻게 숭고한 순교의 피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바탕가스 앞바다의 물결은 어제도 흘렀고 내일도 흐르게 될 것이다. 때로는 심한 바람과 함께 또 휘몰아쳐서 아까운 젊은 생명을 계속 앗아갈 것이다. 그러나 오늘 젊은 사모님과 그 딸 그리고 선교훈련생들이 흘린 피는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다.
이제 고향땅 한국의 하늘이 아닌, 영원한 본향인 천국에서 그동안 사역으로 힘들었던 모든 심신을 편히 쉬며 안식하시기를 기도하며 필자는 칼럼을 마친다.
2002년 7월 “교회연합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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