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신의주)에 봄이 오는 소리

2020. 3. 27. 10:47선교칼럼

빼앗긴 들(신의주)에 봄이 오는 소리

조귀삼(세계로 선교연구원)

  최근 우리들의 눈을 휘 둥글게 만드는 사건은 북한의 개방정책이다. 매체의 1면에는 어김없이 북한관련 뉴스가 톱 사이즈를 장식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신의주를 특구화(特區化)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대 행정장관에 네덜란드 국적의 중국 갑부인 양빈을 내정했다는 소식이다. 양빈은 언급하기를 신의주를 홍콩식으로 자본주의화하면서도 북한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장소로 만들겠다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비자와 상관없이 출입할 수 있다고 한다. 더욱 감사한 것은 종교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한다는 소식이다.

  북한의 변화는 신의주에 국한되지 않고 개성공단도 개방을 위해서 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한다. 개성이란 끊어진 휴전선에서 불과 몇 십분 안되는 거리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개성공단은 남한의 기업들이 쉽게 투자하고 활동하기 위해서 조성되는 공단이라고 한다.

  동해선과 경의선의 연결을 위해서 남과 북이 첫 삽을 떴다.. 이는 민족 공존을 위해서 끊어진 철도들을 연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철도를 통해서 북한 땅은 물론 러시아와 유럽으로 연결되는 물류의 통로를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인 것 같다. 남북이 상호 이익이 발생한다는 상업적인 목적이라 할지라도 이는 분명 북한의 문이 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변화의 비단 상업적인 조치뿐만이 아니라 군사적인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최근에는 남북 군()의 직통전화의 개설을 마쳤다는 보도도 접해본다. 이와 같은 일련의 조치들은 남북의 극한 대립에서 상생의 길로 변화해 가는 모습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개방화 정책은 북한선수의 부산 아시안 게임의 참가로 남북의 거리를 더욱 좁히는 계기가 되었다. 소위 인공기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국민들 가슴속에는 그래도 우리 민족인 북한의 선수들이 모든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이다.

  이와 같은 남북의 화해와 협력의 시간들을 접하면서 세월이 참으로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의 청소년기는 남북의 극한 대립 속에서 정치인들이 던져주는 북한의 부정적인 요소들만 보고 자랐다. 따라서 북한은 마치 머리에 뿔이 두어개 달린 이상한 외계인들의 집 산촌처럼 생각하면서 자랐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북한에 대한 이메지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특히 이산 가족들의 만남과 대화 그리고 헤어짐을 보면서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 앞에서 그렇다.

  필자는 이제 신의주의 개방이 주는 의미를 선교와 관련시켜 보고자 한다. 한국교회는 이미 국수공장을 비롯한 식량지원 그리고 다양한 생존물자를 통해서 십자가의 사랑이 증거 되었다. 그러나 신의주의 개방이 갖는 호기를 한국교회는 북한선교를 위한 기회로 활용해야 하겠다. 보다 더 실제적인 선교전략이 도출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교파와 교단주의가 갖는 소리만 요란한 전시 선교가 아닌 조용하면서도 분명한 영혼구원의 전략을 가져야 한다. 여러 가지 선교전략가운데 실존 전도(presence evangelism)가 있다. 즉 삶의 현장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향기를 통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전도법이다. 이는 이미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는 무슬림권 사역의 중요한 전략이 되었다. 또한 가능하면 특구에 합법적으로 입주할 기업과 함께 선교전략을 숙의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선교를 열었던 윌리암 케리의 선교도 떠지고 보면 네덜란드 계열의 동인도회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필자는 이제 이 글을 접고자 한다. 그 동안 그토록 요원할 것으로만 여겼던 북녘땅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신의주는 특구로 지정이 되었다. 동토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이 봄의 소식은 세속주의나 상업주의 정략 주의자들만이 즐기게 해서는 안된다.

  북녘의 마음들은 반세기 동안 진리의 거룩한 빛을 모른체 동토처럼 얼어붙어 있다. 결국 복음의 진리만이 봄의 따뜻한 자유를 만끽하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주님은 너희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20029교회연합신문 토요 시평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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