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30. 11:15ㆍ선교칼럼
새해에 생각해 보는 선교
조귀삼 교수(한세대)
한국교회가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숫자가 12,000여 명이 된다. 이들 중에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의 600여 명의 선교사들도 당당하게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선교사의 숫자는 세계에서 미국 다음가는 두 번째 선교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선교의 위상은 그동안 한국교회의 성장이 보여준 경이로움과 함께 세계선교의 역사에서도 기적을 이룰 선교국가로 부상하였음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오늘 이러한 엄청난 선교의 중심에서 선교의 본질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동안 10여 년 이상을 신학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강의해온 사람으로서 나름대로의 선교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즉 선교란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여 주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논지를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의 몇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선교는 지리적 경계를 넘었다. 마태복음 28:18-20절의 지상명령 이후에 사도들을 통해서 복음은 지리적 경계를 넘기 시작했다.. 여러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하나님 의로부터 부름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지리적 영역을 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토록 뛰어넘기를 꺼려했던 유대 땅을 넘어서 이방 땅인 소아시아, 유럽 그리고 로마, 본인이 세상 끝이라고 여겼던 스페인 까지도 복음의 지경을 넓히고 순교하였다. 이후에 복음은 유럽을 정복하고 1000여년을 지탱하였다. 이후 종교개혁과 함께 가톨릭은 바스코 다 가마 정책에 의해서 남미와 아시아에 십자가를 세웠고, 청교도들은 북미에 복음의 터를 잡아 지금까지도 세계선교에 힘썼으며 태평양을 넘어서 한국 땅까지 지리적 확산을 가져왔다.
둘째는 선교는 정치적 경계를 넘은 것이다. 초대교회역사에 AD313년에 콘스탄틴 대제는 기독교를 공인된 종교로 선포함으로써 복음이 정치적 경계를 넘는 시발점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선교사들이 중동지역의 선교에 있어서 정치적 벽을 넘는데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경험들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셋째는, 선교는 문화적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다. 문화란 일단의 그룹들이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얻어진 습관들이 체계화되어서 나타난 것이 문화다. 복음은 유대의 자민족중심주의 문화를 넘어서 사납기로 유명한 앵글로 섹슨 문화를 넘었고, 남미의 잉카문화, 그리고 한국 속에 있는 한(한)의 문화를 뛰어 넘었다.
네 번째, 선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류를 흔히 미전도 종족이라는 말을 쓴다. 미전도 종족 이란 한 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겠으나 광의적으로 보면 예수 생명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따라서 정글 속에 있는 문맹인이나 대도시 속에 있는 문명인이나 예수가 없는 사람은 다 미전도 종족일 수가 있다.
다섯 번째는, 선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해야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좋은 소식들이 있다. 로또 당첨의 소식부터 부자 되었다는 소식까지 다양한 소식들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씨앗이 전해져서 생명의 싹이 성장해 가느냐에 선교의 성패가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마지막 여섯째는, 선교는 주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은 자신을 통해서 예수 믿는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주님과의 관계를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제자화의 중요성은 제자화 만이 인간의 심층부에 자리 잡은 세계관이 바뀔 수 있어서 주님을 앙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필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선교의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하였다. 앞으로 글이 전개될수록 조금 더 가벼운 이야기를 통해서 선교를 나누고자 한다.
2005년 1월 순복음 가족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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