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를 위한 종(servant)

2020. 3. 30. 11:24선교칼럼

선교를 위한 종(servant)

조귀삼 교수(한세대)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삶에 대한 교훈을 수 없이 많이 주셨다. 섬기는 삶이란 봉사와 희생이 뒤 따르는 선교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선택하였던 것은 열방을 섬기는 종의 사명을 감당시키기 위해서 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이 되어 만민을 섬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40-55장에 나오는 종의 노래(servant song)"는 구약성경의 선교적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선교학자 로울리(Rowely)에 의하면 이사야 49:6이방의 빛이 되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선교적 임무를 가리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이 종의 노래를 해석함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담당한 선교는 신약시대에 교회가 맡은 선교와는 그 성격이 다르지만 여호와의 빛을 이방에 전하는 데 있어서 활동적인 증거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드 리더는 말하기를 이방의 빛은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서, 이스라엘은 선교의 목표가 아니라 선교를 위한 기지이다라고 말했다.

  종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 볼 수 있다. 먼저는 집단적 의미로 집단적 의미에서의 종은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즉 아브라함(49:6), 모세(42:6), 예레미야(49:1), 현자들(50:4후반절), 다윗(53:1), 포로 된 자들 (52:13-53:12)로 이어지면서 선교적 공동체로 부름을 받은 민족인 이스라엘(41:8,9 ;42:1)을 가리킨다. 두 번째는 개인적 의미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를 나타낸다. 이는 선교를 친히 구현하실 분이심을 의미하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선교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사야서 속에서의 종의 의미는 두 가지 사상이 함께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땅 끝에서 부터 부름을 받은 이스라엘이다(41:8,9). 이 종은 소경이요 귀머거리이다(42:19). 이 종은 불순종하고 믿음이 없으나(42:22; 43:22)여호와께서 구속하였고(43:1), 그의 증인으로 택함 받았다(43:10;44:8). 종은 한분으로서, 성령을 받고, 이방에 공의를 베푸실 분이다(42:1,6,6). 즉 종은 이스라엘이며(49:3),(49:3), 이스라엘의 대표자로(49:5), 열방에 보내어진 자이다(49:6). 그리고 종은 낮은 자이다(49:22-26). 또한 종은 순종하는 자들이며(50:4,5), 고통당하실 자이다(50:6). 결국 종은 죽음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실(53:5,6,10-12) 고난의 구속자이다(53:3).

  종의 임무는 하늘의 하나님의 계시를 이 땅 위의 사람들에게 전하여준 선교의 임무가 있다. 먼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알려 주는 것(사 42:6,7)이다.(사42:6,7)이다. 즉 하나님의 이스라엘 선택의 기본 목적은 선교의 임무로서 하나님의 계시(말씀)를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다음은 이방에 공의를 베풀게 되는 것 이다(42:1,4) 결국 종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에게 포커스가 모아진다.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는 이스라엘에게 수용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다른 사람들 위해서 희생하는 고난의 가치를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즉 유대인들의 개념 속에는 그들의 해방자요 다스릴 자로 알았지 대속의 고난의 개념은 없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 목적은 메시야가 모든 이방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는 왕국의 승리는 무력이나 큰 권세로서 이루어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의 희생의 대가로 얻어질 수 있음을 말씀하심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통해 보여주신 종의 사명을 생각해 보면서 자문자답해 보아야 한다. 즉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가 선교의 도구가 되기 위하여 고난 받은 종으로서의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이다. 종 된 삶이 아닌 많은 사람들 속에 군림하는 기독교가 될 때에 하나님의 교회는 점점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20045월 국민일보, “조귀삼 교수의 선교이야기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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