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8)
-
선교하는 공동체인 교회
선교하는 공동체인 교회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교회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선교사역이다. 따라서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존재 이유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교회는 2중의 구속사적 목표를 지향한다. 그 하나는 현재적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전 세계적인 구속 사역의 확장에 참여하는 것이다. 모든 민족들 중에 선택된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는다(행 2:39). 또 하나의 다른 목표는 종말론적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래의 비전에 따라 특히 요한계시록의 순교적 7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성취된다.(계 2:26-28, 3:21) 교회 공동체는 세 가지 관점에서의 부르심이 존재한다. 첫 번째 관점으로는, 구성적인 근본관계에서 ..
2020.04.17 -
박성범 선교사의 유고를 보면서
박성범 선교사의 유고를 보면서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다. 새벽에 일어나 관습적으로 TV 스위치를 켜게 된다. 혹시 좋은 소식이 있지나 않을까? 이러한 마음은 나 혼자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날마다 쏟아지는 세상적인 소식들은 약육강식의 소식들뿐인 줄을 알면서도 그래도 기대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참담한 소식들을 접할 때에는 마음이 무너져 버린다. 오늘 아침에 듣는 소식은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경우이다. 국내의 한 신문사에 기술된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꼬마의 비자 연장을 위해서 싱가포르로 가던 여객기가 추락을 당한 것이다. 실종 에어아시아機에서 사라진 박성범 선교사는 빈민촌에 살며 한글-목욕 봉사 활동을 감당했던 ‘키다리 ..
2020.04.06 -
콜럼비아의 순교자 쳇 비터맨
콜럼비아의 순교자 쳇 비터맨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쳇 비터맨은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의 랭커스터에서,, 비터맨 계량 회사를 경영하는 아버지 슬하에서 여덟 명의 자녀 중 장남으로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콜럼비아 성서대학에 들어간 그는 1976년, 콜럼비아의 위크리프 선교사의 딸인 브렌다 가드너를 만나 결혼하였다.. 브랜다를 만나기 전부터 번역 선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언어학 공부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두 해 여름을 SIL에서 공부 했으나 언어에 대한 지식의 진전이 별로 없었다. 비터맨은 처음에는 말레이시아에서 번역 선교사로 사역하고 싶었으나 위클리프 선교회의 임원들은 그에게 컬럼비아로 가도록 요청하였다. 쳇 비터맨은 두 아이를 임신한 그의 아내 브렌다와 함께 1979년 여름 컬럼비아에 첫 발..
2020.04.06 -
베트남의 순교자 베티 올센
베트남의 순교자 베티 올센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베트남은 우리와도 관계가 있는 땅이다. 특히 이념 대결이 극에 달해 있었던 월남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면서 싸웠던 땅이기도 하다. 이런 땅에서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며 순교했던 베티 올센에 대해서 기술하고자 한다. 베티 올센(Betty Olsen)은 선교사의 딸로 검은 대륙인 아프리카에서 성장하였다. 비록 검은 대륙이었지만 어릴 때의 성장기가 그녀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한 순간은 때로는 진한 외로움으로 변하기도 한다. 부모님은 사역에 늘 바빴고, 때로는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을 순회하는 부모님의 사역으로 인해서 집을 비운 사이 무서움과 쓸쓸함의 나날을 보내기도 하였다. 베티가 8세가 되었을 때에 1년 8개..
2020.04.06 -
베티와 죤 스탬의 순교
베티와 죤 스탬의 순교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정치적인 혼란은 뜻하지 않게 선교사들의 순교를 가져온다. 20세기 초의 중국은 많은 혼란을 겪은 시기였다. 당시 중국을 다스리던 손문이 1925년 서거하자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지방에서는 열 개가 넘는 정부가 탄생이 되고, 변경 지역에서는 제각기 군대의 힘에 의한 지배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모택동에 의한 공산당의 출현은 인민재판과 같은 극악한 방법으로 선교사들을 처형하였다.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 세력으로 장개석의 나타남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황 속에서 선교사들은 중국을 떠나라는 경고가 수없이 내려졌다. 이러한 와중에 1927년 한 해 동안에 50%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중국을 등지게 되었다. 심지어는 중국 내지 ..
2020.04.06 -
순교가 지속된 20세기 선교
순교가 지속된 20세기 선교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19세기를 넘어서 20세기 초까지 지속된 서구 선교는 몇 가지 이유로 인해서 선교지에서 배척을 받게 되었다. 첫째는 서구의 백인들은 약소국을 착취하는 제국주의자라고 생각했다. 물론 현대 선교 가운데 정치적인 요소인 제국주의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타국을 지배하는 서구의 외교관이나, 자원을 개발하여 반출하는 사업가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러한 변명에도 선교지 토착인들은 선교사를 그들과 같은 부류로 보는 것이 문제였다. 두 번째 이유는 그동안 식민지로 있었던 국가들이 독립을 하면서 국가주의가 팽배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국가주의는 당연하게 외세를 배격하는 현상을 가져온다.. 이러한 상황들은 당연히 서구 세력의 한줄기로 ..
2020.04.06